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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면의 끝.
    생각1 2020. 4. 8. 07:28

    침대 벽면에 있는 내 사람들. 

    불면증이 심했다. 그건 옛날에도 그랬고, 아마 오늘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잠자고 싶다. 잠이 안 온다. 그건 굉장히 괴롭다. 혀 끝으로 펼쳐진 장기들은 모두 잠들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억지로 장기들을 깨운다. 숨을 쉰다. 눈을 깜빡인다. 그러면 모든 일이 버거워진다. 모든 게 무겁다. 나는 바닥으로 점점 박혀간다. 아무리 좋은 침대 위라도 잠을 자지 못 할 것 같다. 좋은 잠옷을 입으면 잠이 온다는데 사실일까. 생각이 건조하다. 양분이 없다. 당연하지. 내게 양분이 없는걸. 

     

    잠을 자지 못하는 이유는 뭘까. 공간 때문일까. 의심해보자. 뭐라도 시작하다. 칼로리 소모가 있는 무슨 짓이라도 해보자. 공간 때문에 자지 못하는 거라면, 사물들에 박힌 시간들 때문일까. 그게 너무 고약하고 짙어서 내가 쾌적하게 잠을 자지 못하는 걸까. 도대체 뭐 때문일까. 머리카락 모근의 끝 부분에서 열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그것들은 작은 개미군단 같다. 긁을까.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살이 붉어질 것이다. 손톱에 상처가 날 것이다. 눈을 감는 순간 상처들에 심장이 달린 듯이 두근 댈 것이다. 

     

    악몽을 꾼다. 사람의 살갗은 찢어지고 피는 이리저리로 튄다. 어떤 이가 꿈에 나온다. 사람은 죽인 사람이다. 그 사람의 범죄를 내가 목격해버렸다. 나는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쫓긴다. 눈을 뜬다. 그래, 다신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일주일이다. 공포가 이불이 되어 내 목을 죄어온다. 

     

    똑똑똑. 

     

    방금 누가 문을 두드렸다. 아니 문을 두드렸나? 내가 잘못들었겠지. 차리리 무서운 꿈이어라. 잠은 오지 않는다. 잠만 오지 않는다. 다른 이들은 우리 집으로 찾아온다. 집은 어둡다. 불은 소용이 없다. 백색의 형광등은 사람의 인기척을 더욱 선명하게 만들어줄 뿐이다. 잠을 자야 한다. 그전에, 문 뒤에 누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나는 그럴만한 용기가 없다. 휴대폰을 손에 잡았다. 숨이 가쁘다. 하지만 참는다. 내가 살아있음을 알리면 안 될 것 같다. 

     

    ...누구에게?
    문 뒤의 그 사람에게.

     

    인터폰을 켠다. 켜기까지 숨은 코 끝부터 턱 끝까지만 들이마셨다가 내보낸다. 계속 템포는 빨라져만 간다. 손이 저리다. 이마와 두피의 경계가 점점 선명해진다. 툭. 복도의 공기를 가르는 듯한 소리가 기계 너머로 들린다. 혹시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는 거 아닐까. 인터폰의 카메라로 당신이 나를 보고 있을까. 나는 흰자와 동공이 가득 메워진 화면을 볼 자신이 없다. 그러나 나는 봐야만 한다. 이 공포를 넘길 사람이 집엔 없다.

     

    켜진 인터폰에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현실인지 의심하기 시작했지만 일부러 나를 겁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제야 상기시킨다. 중문 아래 문틈 사이로 현관 센서가 켜졌다. 나는 못 본척하고 침대 위로 몸을 가져다 놓는다. 그 뒤에 아무도 없다는 건 이미 여러 차례 확인했다. 센서가 제멋대로 켜지는 건 사람 탓은 아니라는 거다. 휴 차라리 귀신이여라. 소원들 빌고 긴장을 이불 위에 뿌려 분산시킨다. 

     

    잠은 여전히 오지 않는다. 몸은 지칠 대로 지쳤다. 침대 옆, 서랍 속에 마치 나를 살려줄 귀인이 있는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서랍을 열었다. 사진을 꺼냈다. 내가 사랑하는 이들이 찍힌 사진이었다. 진정하지 못하는 손으로 테이프를 열심히 뜨,뜯었다. 누워서 아주 잘 보이는 위치에 그들의 사진을 붙인다. 속으로 생각한다. 이건 부적이다. 부적이다. 온갖 밝은 기운들이 담겨있는 부적이다. 부적이다. 긍정. 행복. 웃음.

     

    신기하게도 불안한 감정들이 사라진다. 그들과 함께 무언가를 먹고 질문했던 시간들이 벽을 따라 흐른다. 심장은 더 이상 쫓기지 않는다. 그제야.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다. 잠이 들었다. 

     

    그 날밤은 악몽을 꾸지 않았다. 나를 지켜주는 내 사람들. 세상은 넓고 여전히 무서우며, 이해 못할 일들이 일어난다. 죄 없는 내가 쫓기는 심정을 가져야 하는 것이 이해되지 않는다. 또, 공포가 사진 한 장으로 사라지는 기적이 이해되지 않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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