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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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 끈질긴 짝사랑일상 2024. 5. 22. 23:39
참외와 진보라색 꽃을 담은 꽃병. 꽃병에 담긴 찬물 때문에 생기는 뿌연 성에와 아스파라거스 화분. 방을 뒹굴던 스피커로 틀어놓은 뉴에이지 음악과 금붕어가 그려진 쉬폰 커튼까지. 별것 아닌 것들의 집합이 나를 짝사랑으로 이끈다. 여름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굉장한 추억이 있지 않는 이상. 아니 있다고 하더라도 그 순간뿐이지 땀범벅인 한낮을 어떻게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줄곧 그렇게 생각했고 스스로를 그 정답 안에 가두었다. 내내 초여름만을 사랑한다고 이야기 했다. 딱 그 초입까지. 생일과 장미의 언저리까지. 그런데 오늘처럼 가슴에 박히는 순간들이 있다. 엘리베이터 공사로 14층을 올라오는 내내 흘린 땀을 샤워로 씻어내고 선풍기를 튼 채로 참외를 깎아 먹는 밤. 또 선물 받은 마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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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치매일상 2024. 1. 1. 12:51
글을 쓰다가 쓰지 않다가 쓴다고 마음 먹었다가 잊었다가 발을 담궜다가 뺐다가 반복하다보니 이제 알겠다. '소설'안에 있을 때의 나와 그 안에 없을 때의 내가 구분이 된다. 누구도 공감하지 못할 감각이지만 나는 명확하다. 단순히 꿈에 빠진 무모한 도전자가 되는 감각이 아니다. 이전에 내가 왔던 길에 대한 확신이다. 지금도 그 길 위에 있지만 '발자국-a'를 찍어버려서 나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부끄러웠다. 무엇도 되지 못하고 다른 길을 시작해버린 것 같아서. 그런데 그것도 나다. 나를 이루는 하나의 조각이다. 커다란 이수림이라는 자아가 꿈쩍도 안하는 고집 불통이니까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 안에 어떤 분열이 일어나던지 움직일 생각을 안하니까. 결국 소설을 쓰겠다고 엉엉 울 뿐인 거대 석상일 뿐이니까. 돌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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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를 망친 역사일상 2023. 5. 27. 01:10
1. 생일은 지난 지 오래오래지만 (사실 일주일 정도) 일상 얘기를 적기에 딱 좋은 소재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 블로그를 처음 만들 때 책 추천이나, 짧은 소설, 그리고 에세이로 채우려고 했는데 어찌하다보니까 갈 길을 잃었다. 음 일상은 길을 잃을 일이 없겠지? 사는 데로 길이니까 ! 편안히 얘기해 보자면 서프라이즈를 망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다. 썰을 풀어 볼까나. 두 꾸꾸들이 내 생일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다. 케이크를 주문 제작해서 나를 부르고 짜잔하려는 계획이었겠지? 마침 나는 공강에 집에서 자고 있었고, 그 둘은 5시에 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까진 성공 ! 그리고 두 꾸꾸가 나를 서프라이즈 장소에 부르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자는 와중에 전화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