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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눈이 오지 않는 계절엔 할 수 없는 말.
거긴 눈 와?
여기? 응 이제 막 오기 시작했어.
조심해.
어릴 적 당신은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적었다. 모든 것에 무심한 사람이었다. 사람도, 사랑도.
그래, 아직도 여전히 당신은 그런 사람이다.
뿌연 고속도로에 냉기를 가로지르며 트럭이 나아가고 있다. 나는 왜인지 당신을 떠올리면 눈이 오는 고속도로가 계속해서 생각난다.
펑펑 내리고 있는 눈 한가운데에 낭만을 즐길 수 없는 당신이 계속해서 달릴 뿐이다. 바퀴가 미끄러지지 않게 꽉 잡고 있는 핸들. 이어지는 위태로운 고가도로.
나는 당신을 생각하면 이 도로가 멈추질 않는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조심해. 라고 말하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스물두 살을 마주 보고 있는 지금도 눈이라면 좋다. 어린 강아지처럼 뛰놀고 싶은 마음이, 심장이 쿵쾅거린다. 따듯한 핫초코 한잔과 손을 잡고 창밖을 바라보고 싶은 감수성도 퐁퐁 샘솟는다.
다만, 나는 조용히 초등학교 3학년 그때로 돌아간다. 해가 떠있을 땐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 당신께 전화를 건다. 밤에 비척 대며 들어와 이불에 얼굴을 묻는 당신.
나는 어쩌면 그 대낮에 당신이 많이
보고 싶었나 봐.몇 번의 연결음.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할 때처럼 떨리기 시작한다. 두려움일까, 설렘일까. 고민을 하고 있으면 전화를 받는 당신이다. 분명 자고 있었으면서 멀쩡한 척 전화를 받는 것은 당신이 세계 1등이다.
아빠, 눈 와.
응.
운전 조심해.
응 알겠어 고마워.
입력이 없어서 출력이 없는 프린터기가 떠올랐다. 그저 당신의 일생에 입력이 없었기에,
낭만, 따듯함, 사랑, 사람, 웃음, 다정, 사색, 성장, 자아.
모든 것을 이률 여유,
여분의 시간,
여분의 재력.
이러한 입력이 없었기에 출력이 없는 건 아닐까.
고마워-. 하고 말하는 소리가 단숨에 행복으로 가득 차더라. 나는 느낄 수 있었다. 활짝 웃는 입꼬리를 통해 이리저리 굴절되어 나오는 소리를 못 알아들을 리 없다. 눈이 휘게 웃는 당신의 얼굴이 내 옆에 내려앉았다가 이내 사르르 녹았다.
당신의 웃음이 증발한 자리에 한 동안,
첫눈이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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