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12/31생각1 2020. 12. 31. 22:57
아침이 밝았다. 침대에서 발을 빼었다. 서늘한 누군가의 손이 발목을 잡는 것만 같았다.
바람이었다. 나는 그 순간 알았다. 오늘 1cm가 자랐다.
키가 자랐다.
작은 키에 반감이 없기에 크게 반갑지 않았다. 그저 이럴 때가 종종 있다. 내가 자랐다는 것을 직감으로 알아차릴 때가 있다.
2020년 12월 31일.
이별, 상실, 두려움, 우울, 극복, 행복, 사랑, 당신, 웃음, 성장.
코로나 덕에 외부에 집중 하기보단 내 안을 들여다볼 시간이 많았다. 그 어떤 해보다 ‘이수림’과 함께 한 시간이 늘었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덜렁대고 무모해도 우선순위를 안다. 벌여 놓은 일에 책임을 질 줄 안다.
배우는 것을 좋아하고 꽤 예쁘게 웃을 줄 안다. 사람을 좋아하는 것도 능력이지만 싫어하는 것 또한 능력인데, 두 가지를 적절하게 할 줄 안다.
각자의 삶, 각자의 사연이 있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불안정한 유년 시절 덕에 종종 회색빛으로 하루를 망칠 때도 있다.
그러나, 21살의 나는 그렇게 흑백이 좋았다.
무채색도 아름답다고 생각했다.
다짐을 한다. 이젠 외면하지 않으려고 한다. 부족한 것에 대해. 나는 부족한 것에 얼굴을 들이밀고 뭐가 문제인지 적극적으로 찾을 거다.
거북함 속을 휘저으려고 한다.
22살의 이수림은 그럴 준비가 되어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22살의 나는 또 어떤 사람일지.
나의 재능에 대해 여러 번 의심했다.
실력에 대해 의심했었다.
그런데
의무적으로 영혼 없이 하는 말이 아니라, 내가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람들이 생각이 나더라. 내 글이 좋다고 연락이 오는 한 줄 한 줄이 실이 되어 나를 엮었다. 나는 어쩌면 털실 스웨터처럼 생겼는지도 몰라.
“내 글이 좋다고 하는 털실 한 가닥,
나를 사랑한다고 하는 털실 한 가닥”내가 작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1호 팬이라고 하는 털실 한 가닥가닥이 모여 이번 겨울은 너무 따듯하다.
나는 20년이 지나, 뒤돌아봤을 때. 다들 다른 길을 찾아 한 번씩 몸을 옮길 때도 여기 남아서 ‘쟤는 아직도 글 쓰네?’ 하는 사람이 될 거다. 가장 오래 여기 남아 미워했던 사람들을 용서도 해보고 사랑도 해보고 결국 소설 속에 옮길 거다.
글을 쓴다는 건 그런건가.
부끄러운 모든 것을 기록으로 남겨 씁쓸해하는 것.
그러기 위해 용기 있는 첫 글자를 계속해서 뱉어내는 것.
나는 참 따듯해. 언제 시간이 지나갔나 신기해.
너는 어때? 있잖아 나는 네가 항상 따듯했으면 좋겠어.
나는 항상 네가 너를 사랑했으면 좋겠어. 내가 너를 사랑하는 만큼.
자, 나도 너에겐 끝없는 털 공이 될 거야. 마구 가져다가 쓰렴. 마구 가져다가 나를 엮으렴.
너에게 딱 어울리는 스웨터가 될 거야. 내가 장담하지.
2021년은 그 옷을 입고 보내자. 행복을 불러 들일거야. 행복에 밀려 죽을 것 같을 거야. 웃다가 숨이 넘어갈 거야. 그 순간순간을 내가 글로 남길게.
어떻게 확신하냐고?
일단 믿어봐, 인생은 종종 믿는 대로 이뤄지거든.'생각1'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별, 골목 (0) 2021.02.09 함장님! (선우정아 - 도망가자) (0) 2021.01.17 첫눈. (0) 2020.12.22 열심히 산다는 것. (0) 2020.10.05 세상은 어떻게 오늘도 (0) 2020.07.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