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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프라이즈를 망친 역사일상 2023. 5. 27. 01:10
1.
생일은 지난 지 오래오래지만 (사실 일주일 정도)
일상 얘기를 적기에 딱 좋은 소재인 것 같아서 가져왔다.
블로그를 처음 만들 때 책 추천이나, 짧은 소설, 그리고 에세이로 채우려고 했는데 어찌하다보니까 갈 길을 잃었다.
음 일상은 길을 잃을 일이 없겠지?
사는 데로 길이니까 !
편안히 얘기해 보자면 서프라이즈를 망친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제일 하고 싶었다.
썰을 풀어 볼까나.
두 꾸꾸들이 내 생일 서프라이즈 파티를 준비했다. 케이크를 주문 제작해서 나를 부르고 짜잔하려는 계획이었겠지?
마침 나는 공강에 집에서 자고 있었고, 그 둘은 5시에 수업이 끝났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헤어지는 것까진 성공 !
그리고 두 꾸꾸가 나를 서프라이즈 장소에 부르기 위해서 전화를 한 것이다.
나는 자는 와중에 전화를 받았는데 내게 들린 첫 번째 소리가, 꾸꾸의 여보세요와 자동차의 깜빡이 소리였다.
아니 이거 눈치 못 채기도 쉽지 않아.
너네 60주년 기념관에서 수업 듣고 있어야 하잖아. 그런데 왜 방향지시등 소리가 들리냐고.
사실 '어디야?'를 묻고 싶었지만
그렇되면 넌씨눈, 그냥 씨눈, 그냥 씨발이 될 것 같아서 '이따가 보자' 하고 전화를 마무리했다.
눈물의 케이크 역시나 등장하자마자 울려 퍼지는 생일 축하합니다 ~
(가사가 정체불명이었음. 산중호걸이라하는 수림님의 생일 날이래요. 두찌빠찌. 이런 가사였는데 전주 사는 꾸꾸가 자기 동네에선 이렇게 부른다고 우김. 전주 사는 지인분들 반박 부탁 드립니다.)
그렇게 산중호걸 수림이의 생일은 마무리되었다. 엄마 2000년 5월 20일에 낳은 건 공주가 아니라
산중호걸이었데. 어흥
2.
이건 오래전부터 나와 함께 온 감정인데 혹시 공감할 사람이 있을까?
영화나 연극에 나오는 클리셰 대사처럼 무언가 잘못된 느낌.
그 느낌을 섬뜩하게 하루에도 여러 번씩 받는다. 뭔가를 두고 오고 놓친 느낌이 든다.
아주 못된 짓을 하고 뒤돌아 나온 것 같은 날이 있다. 실제로는 집 밖으로 나가지도 않았을뿐더러.
방금 자고 일어났고, 그날은 수업도 과제도 없는 날인데도
내가 큰 일을 잊어버리고 혹은 망치고 일어난 것 같은 느낌. 정말 심한 날은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쳐와서 이 집 안에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당장이라도 경찰이 들이닥치거나,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누군가 고발할 것 같은 느낌이랄까.
알 수 없는 묵직한 죄책감이 얼굴을 뒤덮는 날이 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지는 않는다. 하지 않는 일에 눈물을 흘릴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다. 어째서 이런 느낌이 드는지는 모르겠다.
인생을 잘못 살고 있다는 확신이 들기도 한다. 그럴 땐 벗어나려고 쓰는 방법이 있다. 혹시 나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에게 나의 비법을 소개한다.
소중한 사람이 써준 편지를 살펴보자. 혹은 카톡도 좋아.
그냥 나에게 확신이 없는 날엔 나를 믿는 다른 사람을 믿어 보는 건?
당신이 믿는 내가 그렇게 나쁜 사람일리 없다는 안일한 합리화에 잠시 행복해보자.
그리고 진짜로 뭘 잘못했는지 찾는다.
그러면 사소한 잘못이라도 나오겠지. 완벽한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면 그걸 차분히 고쳐보자.
그럼 내일 또 더 나아지겠지.
오늘도 한 땀 기워지는 이수림. 24세.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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