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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유학 한 달째카테고리 없음 2026. 5. 11. 02:13
일본에 유학을 온 지 한 달을 넘어가는 시점이다.
나는 출판디자인(편집디자인)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왔고 수업은 계획대로 진행 중에 있다.
한국처럼 전기, 후기로 수업 구성이 되어있어서 막 입학하고 한 달이 되어가는 이 시점에선 아날로그 수업이 많다.
딱 세부전공만 예상하고 바로 가자마자 출판을 배울 거라고 생각했던 건 나의 오산이었다.
어떻게 하면 '디자이너의 눈'을 가지느냐에 대한 수업이 주가 되고 그렇게 디자이너의 눈을 가지려면 1mm의 차이, 종이의 질감, 수작업의 역사 등등을 배워야 한다는 학교의 교육방침 아래에 나는
아주 어리둥절한 하루들의 연속이다.
그림은 그려본 적이 없는데 드로잉 수업이 있고, 박스부터 시작해서 생활용품을 그리고 주변에 곡선과 직선을 찾아 그것을 그리기 위한 구도를 잡는다.
아크릴 물감은 초등학생 때나 사용해봤는데 아크릴 물감으로 그림을 그려 제출하려고 하고
한자를 샤프로 쓰는 것도 어려운데, 폰트의 역사부터 시작해서 컴퓨터 폰트가 수작업으로 생겨나는 과정을 익힌다.
그리고 명조체를 손으로 그린다. 여러 자들이 있다. 처음 보는 곡선 자들(누구세요.)

개못했음ㅋㅋㅋㅋㅋㅋ웃음만 나옵미다. 다만 즐거웠음 그리는 동안 (미대는 다녀본 적 없지만 거긴 더 본격적이겠지만) 뭔가 미대스러운 느낌에 내가 여기에 있는 게 맞는 건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돌아가는 길에 마트에서 맛난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금새 고민은 날아가지만 택배를 택배박스에서 꺼내는 순간 뻐킹 아날로그를 외치게 된다. 현관문 앞에 놔주세요! 는 불가능한 맨션.

마트에서 쟁여 놓는 아이스크림 존맛. 아날로그중에 아날로그 출판을 배우러온 주제에 시스템이 아날로그인 것엔 진덜머리가 나는 나.
그래도 나를 두근 거리게 하는 수업 또한 존재한다. 일본의 북디자이너계 전설을 알 수 있는 수업이라던지
헌책방 거리에서 한 블럭 떨어진 학교의 위치라던지
그 헌책방 거리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출판사, 신문사, 제지공장들이 즐비해 있다는 것은 나를 설레게 한다.
후기가 되면 수업들이 모두 디지털로 바뀌어 실제로 실무에서 쓸 수 있는 기술들을 배우게 된다.
그러고보면 수업 구성이 알찬 건가 싶다. 실무와 이론, 역사, 현황까지 배울 수 있는 자리는 매우 드물다. 이것이 내가 이 학교에 유학을 오게 된 가장 큰 이유가 아닐까 싶다.
동경과 현실엔 괴리가 있지만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겨우 나를 붙들어맨다.
생각보다 내가 집에만 있어서 당황스럽다.
여기가 한국인지 일본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땐 일본 00 성지, 일본 킷사텐 추천 등등을 보고 '와-' 하는 기분에 시달렸지만
일본 도쿄에 살고 있는 현시점에서는 학교-집-마트를 반복할 뿐이다. 나도 이런 내가 놀랍다!

리짱과 함께 간 학교근처 킷사 우울할 때면 사람과 만나 왜 자신이 우울한지 쏟아 놓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결국 한계치에 다다르며 사람을 만나 카페에 가지만
혼자는 잘 가지 않게 된다. 오히려 한국에 있을 땐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했는데 혼자가 되니까 사람이 반대가 되어버린다.
음 외지에서 마음이 생각보다 건강한 걸로 치자.

따끈따근 나폴리탄과 메론소다♥.... 오히려 휴대폰으로 사진을 볼 때 더 일본에 가고 싶은 이 느낌(지금 이 글도 도쿄 한복판에서 쓰는 중이지만..)
아직 적응기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한 달이니까 잔뜩 긴장하고 학교에 다녀와서 집 현관문을 여는 순간 녹초가 되는 걸지도.
그래서 아무 데도 나가고 싶지 않은 걸지도 모른다. 정말로 도쿄 생활이 익숙해지면 좀이 쑤셔서 이곳저곳 돌아다닐 수도 있다.
과제량이 생각보다 많아서 집에만 있게 되는 것도 있다. 해보지 않은 것들로 이뤄진 과제는 사람을 진땀 나게 한다.
오히려 한국에서 문창과 다닐 때는 비축해 놓은 글도 많고 글을 쓰는 것에 어렵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그렇다고 모든 글이 잘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부담은 없었는데 지금은 꽤 헤비 하게 소화시키는 중이다. 꾸역꾸역 넘어가는 나의 디자인 과제들..
집에만 있으니까 집밥만 먹어서 사진첩엔 잘 대접받은 이수림의 만족스러운 집밥 사진만 가득이다.(셰프 이수림, 손님 이수림)
도쿄에서 맛난 김치를 찾아 헤매고 있는 김치러버는 농협김치를 만나 겨우 진정되었다.
안 그래도 약한 면역력 알레르기 체질인 나는 거주지를 다른 나라로 옮기는 거대한 시도를 하고
알레르기가 폭발해 버렸다. 피부, 눈, 콧물, 불면 등등 역시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건 나를 돌보는 일이다.
면역력 쓰레기인 몸뚱이 이외의 멘탈은 잘 자리를 잡고 있는 중이다. 학교에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나 잘 어울리고 있고(♥)
일본어 공부도 재미있다. 여기에 와서 살고 있으니까 억지로 공부를 하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공부를 하게 된다. 살려면 해야지.(생존공부)
얼렁뚱땅 지나가는 시간 속에서 나는 지금 현재를 사랑하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한다.
자꾸만 미래를 상상하며 현재의 나를 닦달하고, 재촉하고, 시작하기 전에 포기하고, 손해와 이익을 따지다가 자멸하는
꼬이고 꼬인 밤을 손으로 한 올 한 올 풀어가며 2년을 가득 채우려고 한다.
나 잘 해내고 있는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