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주의, <이터널 선샤인> 2004
서로를 다 아는 커플이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 아니던가. 왜 서로는 다 알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끝이 나는 걸까. 조엘은 말한다. '식당에서 안쓰럽다 생각하는 시체 같은 커플이 되는 걸까. 그건 싫은데.'
유행에 무던하고 독서와 그림을 좋아하는 조엘과, 즉흥과 여행, 술과 짧은 만남을 사랑하는 클레멘타인은 연인이다. 앞서 말했다 싶이 왜 연인들의 흔한 헤어짐은 서로를 다 안다고 자부하는 시점에서 이뤄지는 걸까.
서로는 기억을 지운다. '라쿠나' 라는 회사는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이다. 사람들이 기억을 지우는 이유는 어쩌면 충동적일 수도, 행복하지 않아서 일수도, 기억의 소중함을 몰라서 혹은
기억의 소중함을 너무 알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둘은 아픔에 끝에 기억을 지우는 선택을 한다.
조엘은 기억을 지우는 와중에 혼란을 겪는다. 추억의 물건들로 점철되어 이어진 기억의 지도 속에서 조엘은 왜인지 집중을 하지 못하고 생생히 깨닫는다.
자신은 아픔을 지우고 싶지않다. 그녀 자체를 인생에서 지우고 싶지 않다. 그 기억 때문에 살 수 없지만 그 기억이 없어도 살 수 없음을, 조엘은 삭제가 진행되고 있는 도중에 깨닫는다. 시작된 일을 무른다는 것은 아주 큰 힘이 필요하다. 조엘에게 큰 힘은 언제나, 클레멘타인이었다. 기억 속에 클레멘타인을 지키기 위하여 조엘은 도망친다. 깨어나려고 노력한다. 조엘은 클레멘타인을 붙잡고 말한다.
'이번엔 다를 거야.'
아무것도 모르는 것만 같았던 기억 속에 클레멘타인은
'날 기억해줘.'
초록의 클렘 (클레멘타인)도 빨강의 클렘도, 파랑의 클렘도 변함없이 사랑하는 조엘. 항상 정신없이 혼돈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누구보다 명석한 클렘. 둘은 망각의 프로그램으로부터 도망갈 수 없음을 알아차린다. 무너지는 기억과 추억, 시간 속에서 처음 만난 날의 조엘은 말한다.
이 순간을 즐겨. 다시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혹은 다시 한번 떠올 일 수 있는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지 집중해. 기억 속에선 작별인사를 할 기회를 갖는다.
현실에서처럼 충동적이지 않게, 현실처럼 흥분하지 않고. 현실처럼 서로의 가장 아픈 부분을 찌르지 않고 서로 안 맞았던 것만 떠올리는 미련한 짓은 하지 않는다.
둘은 현실에서 하지 않았던 선택을 하며 차분히 앉아서
처음의 당신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사랑하는지 고백하고, 잘가를 말한다. 그리고 둘은 다음을 기약한다. 이번은 사라져도 당신은 사랑했다고 끝맺는다. 그리고 아무도 기억하지 못할 약속을 한다. 망각 속에서의 약속.
이터널 선샤인의 시간 맥락 따위 신경 쓸 필요 없다. 그건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우린 하나의 의문을 품는다. 기차의 안에서 마주친 파란 머리의 서점 직원은 인사를 건넨다. '내 이름은 클레멘타인이에요.'
왜인지 모른 것에서 도망치고 있던 남자는 말한다. '조엘이에요, 예쁜 이름이네요.'
우린 모두
두 번째 사랑이 아닐까.
그러니 거부할 수 없던 당신이 아니었을까.
결말을 알아도
지금의 이 순간을 거절할 용기는,
다시 태어나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