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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언니에게> 최진영 (#n번방)

Rim_thinking 2020. 4. 1. 22:09

 

짐승이니, 악마니 그런 판타지 속에 살지마. 너네를 신화라고 스스로 생각하지 마. 오글거리고 쪽팔린다. 방구석 찌질이들, 명백한 범죄자들. 그게 너희 이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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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제야야, 너는 숨어있지 마. 거긴 너무 차가워. 있잖아 그렇게 아프고 선명한 기억 가지고 숨어있지 마. 거긴 너무 어두워. 밝은 쪽으로 걸어. 당당하게 걸어. 우리 그렇게 하자. 꽃피는 봄이 오면 새싹들과 함께 기지개 켜는 걸로 하자. 그때는 우리 괜찮아지는 걸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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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작가의 소설을 읽었다. <이제야 언니에게> 시기적절하게 읽었다고 말해야 할까. 말을 줄였다.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당숙에게 강간당한 제야의 이야기에 그녀의 일기가 마냥 다른 나라 이야기 같지 않았다. 우리 사회엔 제야가 너무나도 많다.

 

 

 

 

'너 안 좋은 일이야, 말하지마. 경찰들도 네 편이 아닐 거야. 세상은 너를 손가락질할 거야.' 

 

 

제야는 홀로 미쳐가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다들 숨기려고 했다. 묻으려고 했다. 너만, 바보 되는 일이라며. 하지만 제야는 그렇지 않았다. 그리고 돌아오는 말은 제야를 다시 한번 가라앉게 했다.

 

'피해자 답지가 않은데? 어린 여자애가 어쩌려고 저래? 어쩜 저렇게 치밀하게 준비를 할 수가 있지? 힘들어 보이지 않는 걸?'

 

이번 n번방 사건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사람들은 악마 같은 인간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2차 가해도 분명히 이뤄지고 있었다. 잘못된 성 개념을 가진 사람들은 왜 그것이 잘못이냐고 물었다. 당신의 삶이 무너져 내려도, 많은 이의 휴대폰 속에서 벗겨져도 당신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코웃음이 나왔다. 역지사지의 개념은 가정교육에서부터 배웠어야 하는데 왜 당신들은 양심과 개념이 없을까. 그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악마와 짐승, 괴물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당신들은 우쭐할 테지. 

 

모자란 인간일 뿐. 여러 방면에서 덜 떨어진 인간일 뿐. 스스로를 신화로 애써 포장하지 않아도 된다. 다들  덜 떨어진 인간이라고 잘 알고 있다. 

 

소설 속에서 제야에게 미안하다고 말한 사람은 단 둘 뿐이다. 제야의 동생 제니와, 사촌동생 승호. 그들은 잘못하지 않았다. 그래도 그들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래야 할 것만 같아서 그 말이 너무나도 간절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울음과 함께 달뜬 숨과 함께 뱉었다고 했다. 현실의 세상에선 '미안'하단 말을 찾기가 힘들다. 사죄를 누군가 사재기라도 했는지 사라져 버렸다. 창고에 꽁꽁 갇혀 나오지 않는 그 말들이 제시간에 정확히, 제 사람들에게 전달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지만, 더 강력한 처벌과 법으로 다스려야 할 테지만, 그것이 시작임을 우리 모두가 알 고있다.

 

나는 오늘도 문을 열고 잠들지 못한다. 창문을 닫고 답답한 공기 속에서 잠을 잔다.

그건 단지 내가 여자여서이다. 뒤척임이 길어지는 오늘은 왠지,

모든 것이 억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