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3

나는 043에 살았다. 이십 하고 일 년을 꼭 채워서 살았다. 그곳에서 태어나서였고, 아빠는 043의 토백이다.
043은 그닥 큰 스펙이나 자랑은 아니지만 나나 아빠나 막걸리 한 잔 걸치면
여기가 살기 참 좋아. 하고 트름하곤 했다. 막걸리는 몸까지 발효 시킨다. 달팽이관이 술에 절어 먹먹하다.
043엔 있을 건 다 있고, 가운데 무심히 흐르는 무심천이 있다.
내 이십일년의 이벤트가 거기에 흐르고, 나도 가끔 가서 흐르고 싶다고 생각했다. 지나갔던 당신이 그리워서 엉엉 울던 날에 무심천은 얼지 않았다더라.
아니 그러다보니 불쑥, 운명이 나를 063으로 데려다 놓았다.
원했던가 원하지 않았던가. 063에 아주 작은 원룸에 몸을 옮겼다. 문을 닫으면 아늑하다. 혼자라 문을 꼭 잠가놓는다.
내가 다음생에 남자로 태어나면 창문과 현관을 모두 열고 잠에 드리라. 그땐 막걸리라도 걸치리라.
사람 하나 들어가기 힘든 부엌 환기창까지 꼼꼼하게 잠가 놓고 망상을 한다.
고장 난 줄 알았던 전화기가 밥때가 된 신생아처럼 우렁차게 운다.
따르르릉! 따르르릉!
'여보세요?'
'선배 전화하셨어요?'
'아니?'
'063에서 전화왔길래...'
043에게 063은 오롯이 나.
전화를 끊고 청소기를 돌렸다. 급하게 마련한 싸구려 무선 청소기 머리가 빠져있었다. 나는 그걸로 계속 바닥을 긁었나. 설거지를 하는데 물이 뜨겁다. 고무장갑을 끼지 않았다. 이 손으로 계속 그릇을 긁었나. 학교 가는 길에 신호 한 번을 놓쳤다. 나는 이 발로 후배의 마음을 긁었나. 아니 후배가 내 마음을 긁었나.
나는 043에게 유일한 063.
063은 전라북도, 당신에게 유일한 전라북도. 그 지역에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당신은 왜 나라고 생각했을까. 당신이 아는 전라북도 사람은 나 하나뿐이니까.
그것보단,
당신 마음속에 나에게서 전화가 오길 기다렸던 마음이.
063에 설레었나.
043에게 063은 나.
기다린 전화는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