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1
• 우산
Rim_thinking
2021. 5. 28. 14:29

90년생 작가의 약력을 가만히 읽었다. 세 줄짜리 점점 간소해져가는 작가 약력에 알 수 없는 환멸을 느꼈다. 너무 이뤄낸 게 많아서 줄인 티가 났기 때문이었다. 줄이고 줄여 상대방이 열등감을 느끼지 않게. 작가란 모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
나는 그런 식의 배려가 더 끔찍했다. 차라리 여느 아마추어 작가들처럼 주저리, 주저리 당신에게 위로가 되고 싶다는 말을 하지. 사이비의 설교처럼, 방문판매의 화술처럼.
그냥,
내가 가고 싶은 그 자리가 더 이상 높아지지 않았으면 좋겠어. 차라리 천박하고 저급했다면,
가지고 싶지 않았을텐데.
작가란건 계속해서 고급져지기만 해서.
내 눈에 그보다 아름다운 건 없어서.
5월 말. 하늘에서 내리는 것은 결코 눈은 아니었으므로, 싸락비. 라고 불러도 되는 걸까 하고 생각했다. 수직으로 내리 꽂는 비가 아니라 사선으로 세상을 빗겨 치니까 그런 눈을 싸락눈이라고 하니까 이번 비는 그럼 싸락비일까. 하고 생각했다.
누가 열었는지 반 틈 열려 있는 창문 밖으로 노란색 우산이 지나갔다. 멀리서 손바닥 반 뼘쯤 되는 인간이 걷고 당신보다 덩치가 훨씬 있는 우산을 어깨에 이고 가더라. 노란 우산이 업혀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비가 오면 저 작은 사람도 누군가를 업고 가는 구나. 비가 오면 누군가를 반드시 업고 가는구나. 오늘 나는 뭘 업고 있던 걸까. 검은 우산이었을까.
어쩌면
아득한 꿈을 향한 열등감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