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소울> 2020
인생이 힘든 이유는 자신이 한계에 몰입하기 때문이라는 글을 쓴 적이 있다. 모순적이게도 잘하고 싶은 마음에 못 하는 것이 무엇인지 집중하기 시작한다. 그것은 쉽게 집착이 되고 트라우마가 된다.
그러니
삶이 우울해지는 것은 너무 잘 살려고 하기 때문이라고.
아주 열심히 아주 또렷이 발표를 한 적이 있다. (웃음)
디즈니에서 나온 <소울>을 보고 비슷한 생각을 했다. 조는 음악을 사랑하기에 인정받지 못하는 자신의 위치에 불만이 있었다. 연주자로서 생계를 꾸려나갈 수 있다면 자신의 인생이 빛을 낼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사후 세계가 있다면 생전의 세계도 있는 법. 이 영화의 근본적인 세계관이었다.
태어나기 전에 사람들은 이미 ‘성질’ 을 터득해서 생명을 얻는 다는 것.
신체가 있기 전에 이미 마음은 ‘결’ 을 타고 태어난다는 것이다.
생전의 세계에서 신체를 얻는 마지막 조건은 영혼의 불꽃을 찾는 것이다. 영화에선 이것을 명확히 이야기하지 않는다.
어떤 순간에 가질 수 있는 지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도.
그저 인생을 살아봤던 멘토들을 앞세워 찰나를 발견하게 하는 시스템인데 멘토들이 포기하면 구제할 방도가 없다.
그리하여 천 년을 태어나지 않는 영혼 22번이 존재한다.
조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약속된 날, 조는 사고로 몸과 정신이 분리되고 만다. 그 후 조의 영혼이 생전 세계로 흘러 들어가고 22번의 멘토가 되는데. 22번은 태어날 생각이 없고 조는 돌아가야만 한다. 둘의 계약은 그렇게 성사된다.
*
인생의 타이틀! 하면 당신은 어떤 제목을 짓겠는가.
당신의 삶은 최종보스와 중간보스가 명확한 게임인가?
떠올려보면 인생은 그 무엇과도 비교되지 않는 흐름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개념 정리를 하듯이 대괄호, 괄호로 줄줄이 써 내려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갈하게 나열된 글자들처럼
한 눈에 보이는 업적들과 사람들, 감정들이 남아 중요한 순간에 형광펜을 그을 수 있다면
얼마나 쉬울까.
게임은 어떤가. 처음 중간 끝이 납득되는 이유로 연결된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에피소드와 칼 같은 레벨업.
어때, 살아보니 인생이 그러하던가.
소울에서는 이와 같은 철학적인 문제를 디즈니 스타일로 캐주얼하게 풀어내고 있다. 뉴욕과 재즈음악을 섞어서 진행이 된다. 이민자 2세의 삶과 예술과 경제의 균형.
삶은 너무나 입체적이여서 한 면을 균일하게 세공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성실은 더욱 빛나는 거 아닐까.
22번을 비롯한 생전의 영혼들은 하나의 색을 띠고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데. 글을 쓰면서 떠올려보니.
크리스탈 색이라고 말하고 싶어 졌다.
단면이 아주 불규칙한, 세공되기 전. 돌과 분리된
ㅡ바로 그 상태의 크리스탈.
빛을 비추는 대로 색이 변하고 반사를 하는 크기도 면마다 제각각이다. 빛의 무지개들이 오묘하게 섞여 머무른 색이 생전의 색깔이다. 우리의 영혼은 그렇게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22번은 여러사건의 끝에 영혼의 불꽃을 가지게 되고
조는 이를 신기하게 여겨 신과 같은 존재, 제리에게 질문한다.
‘22번은 삶의 목적을 찾지 못했는데 어떻게 영혼의 불꽃을 가졌죠?'
'오 영혼의 불꽃은 삶의 목적이 아녜요. 멘토들은 늘 이렇다니까.'
조의 삶의 목적은 음악이라 생각했고 음악으로 인생을 가꾸기 위해 노력했다. 그것만을 위해 달려왔고 그것이 아니면 쓸모없다고 생각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22번은 조의 몸에 들어가 하루를 경험함으로써 영혼의 불꽃을 얻었다. 22번은 음악을 위해 살아가지 않는데도 말이다.
태어나기 위해 얻어야만 하는 영혼의 불꽃은 그리 대단한 것이 아님을 22번을 통해 우리는 알 수 있다.
사람과 대화하고 미용실에 가고,
옷을 새로 맞추고, 지하철을 타고,
플랫폼에서 인디 밴드의 노래를 듣고,
자리에 앉아 직장까지 가는 일.
우리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 우리의 인생이 쓸모없던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나?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내 삶은 모두 쓸모없다고, 별 볼일 없고 태어날 가치가 없다고. 당신은 말할 수 있나? (그렇다면 매우 슬프겠다.)
나는 타이틀에 얽매여 살았던 사람이고 그것을 위해 오늘 날씨가 어땠는지 봄은 어디쯤 오고 있는지 지나간 겨울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를 소홀이 했다. 자격증 공부를 위해 하루 웃음을 참았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성적을 올리기 위해 오늘의 격언 따위 바라보지 않았고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길고양이의 눈이
갈색이었는가 초록이었는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그 고양이의 발에 못이 박혀 있다고 해도 나는 기억이 나질 않을 것이다.
거창한 것을 위해 내 하루를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생각해보았고,
ㅡ엄마가 떠올랐다.
엄마가 나를 뱃속에 품을 때 계산기를 두드리며 낳을 가치가 있는지 생각했을까.
아빠는 자신의 대를 이어 번영시키지 못하면 생명이 쓸모없다고 생각하고 우릴 키웠을까.
5살에 나는 엄마의 5월이어서 사랑받았고
17살의 나는 아빠의 교복이어서 사랑받았다.
5월은 지나고 교복을 벗을 나이가 되었지만
사랑은 여전히 거기 남아있다.
하나의 골인지점에 얼마나 멋있게 도달하기 경쟁하는 것보다. 오늘은 몇 번을 웃었고 몇 곡의 재즈음악을 들었는지 하루를 사랑하는 것이
삶을 불꽃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생각했다.
조금 눈물이 났다. 심지처럼 타고 있는 내 인생에 부채질을 하는 나를 마주한 것 같아서.
그 끝은 결국 죽음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