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산다는 것.

내가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순간이 찾아온다. 여러 가지 일이 나를 덮치고 쓸어나갈 때. 나는 휩쓸리지 않을 수 있는가. 자리에 깊게 박혀, 나를 덮치는 물살에 태연할 수 있을까.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잡고 견딜 것인가.
그저 게으르면 안 돼! 열심히 살아야 해!
속으로 다그치며 버티기엔
이미 검게 그을려버린 마음속이 처량하다.
일상엔 균형이 있다. 인간은 잠을 자야 에너지를 충전하니까. 시간을 써서 기다려야만 다시 일을 할 수 있는 기계와 비슷한 구석이 있다.
잠을 자야 할 시간을 쪼개 하나의 일을 해낸다면, 반드시 해낼 수 없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해낼 수는 있더라도 힘든 일이 있기 마련이다.
남들이 말하는 열심히 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분명 해낼 수 없다는 것을 해내고야 마는 것.
그러면, 열심히 산다는 것은
힘들게 산다는 것과 동의어가 아닐까.
열심히 살고 싶습니다는 힘들게 살고 싶습니다
열심히 일 하고 싶습니다. 힘들고 싶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들은 모두 웃는다. 느낌표가 잘 어울리게, 발랄하게.
열심히 일 하겠습니다! 힘들게 일 하겠습니다!
누가 불어넣은 '열심'일까.
어쩌면 잔인한 찰나. 장면들. 눈을 감아 미련한 연민을 잠재워 본다. 자발적인 열심은 그러니 더 대단한 거겠지. 자발적인 힘듦일 테니.
정말 열심히 사는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히 사는 줄 모르는 경우가 왕왕 있다. 힘들지 않기에. 살아가는 것이 행복하니까 '열심'이라는 단어를 붙일 줄 몰랐겠지.
어쩌면 잠자는 공주가 왕자의 키스로 깨어나듯이
참 열심히 사는구나. 그것은
단잠을 깨우는 주문일지도 몰라.
다른 이들에게 이 말을 삼가해야 겠다고 느꼈다.
나에게도 열심히 살자 보다는 행복하게 살자. 맡은 일을 다 해내자. 버겁겠지. 무겁겠지. 숨 막히겠지. 이것저것 하고 싶은 욕심은 많은데 바스락거리는 몸이 원망스럽겠지.
당연해. 인간은 일정 시간을 쉬어야 하니까.
모든 마음을 쏟아 붓다. '열심'에 집중 말고 네게 마음을 주는 귀여운 것들에게 집중하며 살아가야 하지 않을까.
선선한 날씨, 어린 길고양이, 마주치면 반짝이는 문장들.
아직은 더 키워야할 글솜씨, 어느새 글자가 지워져 버린 키보드, 내 사람들.
내게 마음을 직접 건내준 건 아닌데, 그것들이 나를 살게 해. 바라만 봐도 내 가슴을 커스터드 크림으로
가득 채워주지. 달아서 미쳐버릴 것 같은 순간이 이어지지.
그러다보면
아, 오늘 하루도 지나갔네.
아, 벌써 10월이네.
아, 21살도 행복했다.
덕분에.
앞으로도 열심히 안 살아야지. 당신들과 함께 걷고 있다는 것에 집중해야지. 그러다 보면 이 생과 안녕할 순간이 오겠지.